2014-12-07

기념일을 놓쳤다.

1000일이라는 기념일이었다.
내 일은 저녁 9시가 넘어서 끝날 거 같았다. 여자친구는 7시에 끝난다.

낮에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우리는 오늘 안될 거 같다는 얘기를 나눴고,
주말은 되어야 좀 여유가 있을 거 같다고 했다.

다시 일을 정신없이 했고, 허기가 져 밥을 시켜먹었다.
이 때의 나는 기념일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날에 대해 최대한의 사실을 적어둬야겠다. 힘든 일이지만 훗날의 나를 위해..)

밥을 먹고 있을 때 여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하고 있냐는 물음에 나 지금 밥을 먹고 있다는 대답을 했다.

내가 밥을 먹고 있는 상황에 대해 여자친구는 너무나 서운해했다.
집에 가버리겠다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주위에서 얘기를 했다. 꽃을 선물하라고..

일이 다 끝나고 나니 9시가 넘었었다.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요가학원에 갈 시간이겠거구나 싶었다. 주변의 꽃 집을 네비로 찾아서 3군데를 가보았다. 문을 다 닫았다. 케익을 사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파리바게트에 가서 케익을 샀다.

그녀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30분 가량 기다리며 케익을 자르며 듣기 좋을 노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나기로 했다. 그녀의 집 앞으로 나갔다. 날씨가 매우 추웠다.

그녀가 왔다. 어두운 표정이었다. 나를 보며 울면서 얘기했다. 천일이라고 특별한 거 바란 것도 아니었고, 그저 같이 저녁먹고 내 옆에서 있으면서 일하는 데 같이 있을 생각이었다고 했다. 근데 내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밥을 먹고 있다고 하니까 너무나 서운했다고 했다. 그녀는 많이 울었다.

그녀는 내게 잘못했어 안했어라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잘못을 한 게 있는건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에게 잘못했다고 했다. 자동차로 가서 좋은 음악을 틀고 케익을 자르고 얘기를 나눴다. 그래도 그녀의 기분은 풀리지 않았었다.

내게 여자의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저께였다.

뭘 좀 가지러 여자친구에게 갔다. 알바하는 여자애와 같이 있었다. 내가 오자 기념일에 있었던 일들은 알바하는 여자애에게 얘기를 했다. 나는 무안했지만 어느 정도 괜찮았다.

저녁에 되어 여친의 친구와 같이 셋이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베트남 쌀국수 집이었다. 밥을 먹으면서 친구에게 기념일에 있었던 내 행동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감정을 가득 담아서 얘기했다. 그 친구도 내게 너무 잘못해서 편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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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사실이다.

이 3번의 질타로 나는 내 생각보다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내가 그렇게 잘못을 했던건가..
나도 내 입장이라는 게 있으나 모든 상황이 여자의 입장으로만 돌아갔다.
여친이 너무나 서운해 하길래 그만 서운해하라고 했다. 너무 서운해하면 나도 서운하다고..
내 서러움 따위야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나도 서운했었다. 서운함을 표출한 자리가 없었다.

내게 1000일의 의미는 그리 크지가 않았다. 1000일이나 됐구나.. 정도였다.
그냥 무덤덤했다. 이것이 사랑의 식었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무덤덤했다.

그냥 여자친구와 만나면서 하루하루가 지나갔고, 어느 덧 천번째 날이 되는 거였다. 천일이라고 특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만나고 있는 지금 순간이 더 특별하면 특별한거다.

나만 그런 걸수도 있는데, 나는 내 생일에도 별 감흥이 없다. 축하를 해주는 친구들도 진실로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서 축하해주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생일이다.

나는 그래..
무덤덤한 성격을 가진 사람인거다.

나의 문제인건가. 내 무덤덤함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면 문제가 된다.
음... 이번 일은 내 입장은 어찌되었든 여친에게 감정적으로 큰 상처를 주게 되었으니 내게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의 이해를 바라는 것보다 나를 바꾸는 일이 더 쉬운 방법인 거 같다.
내 모습 그대로를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게 쉬운 거 같다.

이게 참 쉬운 방법이면서도 어려운 것은, '나'라는 존재가 내 스스로의 내가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음...

결국, 나는 내 고집대로 나를 바꾸지 않고 상대방에게 이해를 해달라는 선택을 한다.
그것이 입장을 바꿔서 내가 상대방에게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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